2009년 "좁은 길" 이라는 찬양으로 찬양대회에 입상을 한 후 찬양사역자 선배님들이 나를 교도소로만 인도해 주셨다. 그렇게 시작한지 한 10년이 지났다.
전도사 시절에는 찬양만 했는데 목사가 되니 설교만 한다. 둘 다 하는 것이 힘들긴 힘들다.
10년 전 처음 교도소사역에 갔을 때, 그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소스라칠 만큼 오만한 전도사였다. 나는 재소자들을 보며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보았다.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이면서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했다.
"비판하지 말라"(눅6:37) 말씀이 있다.
원어성경으로는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선과 악을 내 마음대로 구분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정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니가 하나님 처럼 심판하지 말라”, “하나님 자리에 앉아 사람을 선와 악으로 구분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내가 전도사 주제에 하나님 자리에 앉아 교도소 그 작은 예배당에 앉아 삶의 절망에 있는 그분들을 심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드보라 선교사님께 한 사형수가 보낸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선교사님,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만 기다리는 내 삶속에 가장 기쁨인 가족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날이 지면 짐승들도 돌아갈 집이 있고 만날 가족이 있는데, 나는 돌아갈 집도 만날 수 있는 가족도 없습니다. 차가운 창살을 붙잡고 수없이 울고 또 울어도 가족의 그리움만 더 커져 갑니다. 때로는 이 고통을 잊고 싶어 사형집행이 빨리 됐으면 하는 간절함이 들기도 합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사형수가 아니라 가족을 그리워하는 한명의 아버지의 마음만 보인다. 한순간 자신의 분노를 못이겨 살인을 하고, 15층 짜리 콩크리트 담벼락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떠난 가족을 보고싶어 하는 사형수의 마음을 보면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해도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물론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에 사형수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 사형수 손에 죽은 피해자 가족들도 죽은 가족이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겠는가! 누군가의 부모, 자식이었을 텐데 가족을 읽은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사형수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분노를 느끼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가족들도 떠나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도, 그 손에 죽은 피해자 가족들도 모두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둘 다 가족을 잃었고 고통속에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
철학자 니체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말한다. 우리는 그냥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냥 억지로라도 잊고 살아가는 것,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행복한 삶인 것이다. 아픈 일들 일일이 기억하며 살아가면 그 인생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는가.
군에 있는 용사들과 상담을 해보면 모두 사연이 있다. 하나같이 아픔이 있고 괴로움과 상처가 있다. 이유가 다 있다. 단 한 사람도 인생을 태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모두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표현을 안 할 뿐이다.
그냥 마음속에 품고, 삭히며 살아가고 있다. 20년 인생을 살아온 군인들 인생이나, 40년 인생을 살아온 내 인생이나 인생의 아픔의 크기는 모두 똑같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13:8)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고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만 해도 성경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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