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근친상간
창세기 19장을 읽는 중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던 날, 롯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도망가는데 아내는 심판 장면이 궁금하여 뒤를 돌아보고 그것 때문에 소금기둥으로 죽게 된다.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두 딸과 살고 있을 때, 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한 다음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갖는다. 그래서 태어난 자식이 모압과 벤암미이다.
지금 2021년의 윤리와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딸들이 먼저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얻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천륜을 어기고 아버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성적만족을 충족하려는 요부들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그녀들이 좀 억울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두 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창19:32)' 이것 뿐이었다.
후손을 이어가는 것, 어쩌면 고대 중동에 살던 여자들에게는 천륜을 어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윤리이고 가치이며 여자로서 책임져야 할 의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얻은 자식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모압과 암몬의 이방민족의 족장이 됐지만 그렇게라도 후손을 얻고자 했던 두 딸의 마음은 한나가 아들을 원했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4000년 전 까마득한 옛날, 지금의 요르단에 살았던 롯의 두 딸들이 자식을 얻고자 취했던 방법은 4000천년이 지난 지금도 잘못된 행동인 것은 분명하나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상황속에 그렇게라도 자식을 얻고자 한 그녀들의 마음까지 지금 우리의 문화와 시선과 기준으로 정죄하는 건, 우리의 오만하고 건방진 판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똑같은 이치로 돌아간다. 결국 나의 생각과 이해, 경험을 기반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상대방은 어떤 생각과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지 고려없이 내가 생각하는 롯의 딸은 그냥 요부일 뿐이다. 그러니 나부터라도 제발 그렇게는.. 목사로서.. 살지 말자.